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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My dearest dear>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정상 바깥의 생을 무너뜨리고 새 일상을 찾으라고 말하는 세상의 다정한 폭력을 담은 영상 작업이다. 작가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끌어안고 살아가며 사랑의 가면을 쓴 폭력에 수없이 부딪혀왔다. 이 과정은 재개발 현장과 닮아 있었다. 더 좋은 건물을 지어준다는, 더 깨끗한 건물을 지어준다는 사랑의 손짓을 가장한 붕괴. 매일이 재개발 현장 같았던 자신의 삶이 너무도 외로웠기에, 자신처럼 그곳에서 떨고 있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작가만의 언어로 위로를 건넨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피부는 아주 얇은 껍질에 불과했는데 피부를 둘러싸고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몸에 밴 자해성 행위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몸에서 도망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신체가 고통에 노출될 때, 몸은 아편계 물질의 분비를 통해 쾌락을 생산한다. 비-정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자해성 행동들, 건강하지 않은 행동들은 고통인 동시에 쾌락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행위들은 분명한 고통인 동시에 정치이자 게임이었다. 고통과 죄책감이 한 차례 지나고 나면 쾌락이 찾아왔으며 아프고 연약한 몸은, 고통은, 적어도 생의 증거였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다른 고통을 느끼고 있을 당신에게, 당신의 고통이 외롭지 않길 바랍니다. - 작가노트 中


<휘이익, 틱! The swish, and f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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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익, 틱!>은 작가 스스로 몸과 멀어진 경험에서 출발한 영상 작업이다. 그는 세상의 당연하고 견고한 정상성을 마주칠 때마다 땅에 발붙이지 못한 채 부유하는 기분을 받았다. 어떻게든 세상의 안온한 중력을 받고 싶었던 그는 좁고 작은 세상의 이름에 맞춰보려다 스스로 실패했다. 스스로에게 가해 온 느린 폭력과 세상의 법칙에 위배되는 처참한 실패는 차마 밖으로 내뱉기 수치스러운 일이어서, 작가는 홀로 숨었다. 언젠가 사랑받을 수 있기를 기다리던 작가는 차라리 먼저 흔적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몰래 삼켜온 주문을, 당신 앞에서 조용히 읊조리며.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땅 위에서 정상성이라는 중력을 안전하게 받고 싶었다. 나를 누르는 세상의 언어만큼 단단해지고 싶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딱딱해졌다. 드러난 뼈를 만지면 안심이 되었다. 물론 그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뼈는 딱딱하지 않고 무르고 둥글었고, 날아갈듯 가벼워진 몸은 휘청거리거나 쓰러질 뿐 날아오르지는 못했다. 내가 토해낸 것들은 삼킨 음식과 위장 속 액체일 뿐이었고, 내가 정말 토해내고 싶었던 정상의 언어들은 절대 변기를 내리는 간단한 행동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그걸 뒤늦게 깨달은 내게 남은 것은 텅 빈 몸뿐이었다. 피부는 얇고 허무한 껍질에 불과했고 뼈는 가볍고 무른 덩어리에 불과했는데, 나를 가두는 틀은 여전히 너무도 견고했다. 비정상으로 불리는 생을 살아냄은 끊임없이 실제를 마주하고 나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이었다. - 작가노트 中



사랑해

작가의 작업은 언제나 몸에서 출발한다. 몸은 수많은 문화와 정체성의 관류지로 작용하기에 몸에서 출발한 경험은 곧 작가의 정체성인 소수자성과 비정상성로 연결된다. 소수자로 살아가며 세상에서 빈번한 폭력과 배제를 겪어온 작가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조그마한 힘이라도 얻기 위해 그 아픈 일상들을 전시하고 명명해야 했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는 세상과 관계 맺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을 깔아뭉개고 외면한 세상을 증오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고민한다. 세상에서 겪은 아픔만큼이나 수많은 사랑을 빚졌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오늘도 빚진 사랑을 더 많이 또 더 널리 베풀고자 다정한 손길을 내민다.